사해에 있는 롯의 아내 소금기둥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임할 때
하나님은 롯과 그의 가족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비틀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비트는 '죄의 속성'이 있습니다.
1) 사위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듣고 구원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듣는 자는 듣고도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2) 롯의 아내가 소돔을 나오면서 뒤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 마음을 과거에 두며 후회와 미련에 붙들려 돌아보면 안됩니다.
몸은 하나님을 향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죄를 향해, 과거를 향해 있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3) 롯은 하나님이 지목하신 구원의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안전하다 여기는 굴에 거주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산'으로 가지 않고, 가까운 성읍으로 피합니다.
그리고 곧 산으로 가서 굴로 들어갑니다. 왜 굴로 들어갔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 보았으니, 이 심판을 피할 '나의 안식처'를 찾는 것입니다.
구원하신 은혜를 신뢰하기 보다,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하나님이 아닌,
자기가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려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아닌 스스로의 '고립'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고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 있는 것입니다.
4) 롯의 딸들은 구원하신 하나님을 소망하는게 아니라 후손이 없을 것에 근심하여 아버지에게로 들어가 임신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내립니다.
: 하나는 알고 둘은 모릅니다. 구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현실을 보며 '절망' 속에 스스로 '대안'을 찾습니다.
구원을 비틀고, 윤리와 도덕, 하나님의 진리와 질서에 대한 관심 보다
조급함 속에 어리석은 대안을 찾습니다.
이와 같은 속성은 롯의 가족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를 퇴색시키며 비틀어 왜곡 시키는 죄의 속성을 뿌리 뽑기 바랍니다.
은혜를 은혜 되도록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창세기 19:23-38]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